해병대로고

해병대주요행사

  • 해병대창설기념행사
  • 도솔산전적문화제
  • 인천상륙작전기념
  • 서울수복기념행사
  • 통영상륙작전문화제
  • 군악연주회
  • 의장대행사
▶해병대창설기념행사

1949년 4월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소수의 병력과 열악한 장비로 출발한 이래 험난한 시련과 역경을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심, 가족적인 단결과 투지로 극복하면서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강군으로 성장해온 해병대의 창설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서,

지나간 반세기를 되돌아 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장년 해병대의 성숙함을 국민에게 올바르게 알려 신뢰와 지지를 획득하는 한편,

전 해병대가족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해 21세기형 군으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표아래 행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창설 기념행사는 해병대사 자체 행사로 간솔하게 실시하며, 필요시 역대사령관, 예비역장성, 명예 해병및 관련 기관,단체장을 선별 초청하고, 10주년 단위 행사시에는 대규모 행사를 계획하여 추진할 예정입니다.
▶도솔산전적문화제

 

 


이 축제는 6.25 전쟁중인 1951년 6월 20일 찬연한 금자탑을 쌓은 무적해병의 도솔산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로 꽃다운 젊음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초개와 같이 던진 살신성인 정신의 무적해병 투혼을 우리 민족의 혼불로 길이 빛내고 평화의 무드속에 점차 소홀 해지는 국민 호국안보 정신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해 있는 분단의 현장에서 6.25 전쟁의 비극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호국안보 의식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해병대 제 2사단, 강원도와 함께 양구군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양구군은 6.25 한국전쟁으로 공산치하에서 수복되어 지금은 자유의 품안에서 번영된 삶을 누리고 날로 발전하고 있는 지역으로 6.25 한국전쟁 중 우리 국군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희생을 치른 UN참전국에 대한 고마움을 양구 군민들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 지역의 많은 전투사 가운데 하나인 도솔산 전투는 한국 해병대가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인 도솔산을 1951년 6월 14일부터 6월 2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승전하여 당시 전쟁 중인 우리 국민에게 승전보를 안겨 주었고 우리지역의 수복과 현재의 휴전선을 고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한국 해병대에 “무적해병”의 휘호를 하사 하셨고 이 전투를 기린 “도솔산가”는 해병대를 거쳐 간 모든 장병들에게 영원한 군가로 남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양구군은 해병대가 도솔산을 탈환한 1951년 6월 20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최초 98년 해병대참전기념사업회와 공동 주최하였고, 99년에는 해병대 사령부와 공동주최, 2000년에는 강원도, 해병사령부 공동주최, 2004년 부터는 해병대제 2사단과 강원도 와 함께 공동 주최하였으며 앞으로 국민과 함께 해병대와 함께 하는 전국 해병대 상징 문화축제로 더 나아가 국제적 문화축제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인천상륙작전기념


인천상륙작전 기념 행사는 1961년부터 매년 인천광역시 주관, 해병대사령부 후원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대역전의 쾌거로써, 당시 절망상태에 처해있던 국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세계 인류에게는 꺼지지 않는 자유와 정의의 등불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적 치하에 있었던 인천은 평균 7m이상의 심한 조석간만의 차와 갯벌로 이뤄진 얕은 수로, 협소한 접근로 등으로 상륙전을 수행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UN군은 북한의 허를 찔러 최단시일내에 전세를 역전시킨다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하에 1950년 9월 15일 새벽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감행하여 북한의 적화야욕을 단번에 꺾어놓았습니다.

한미 양국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수도 서울 탈환작전, 도솔산 전투, 김일성 고지 전투는 물론 이후 월남전까지 혈맹의 전우로서 공격하여 뺏지못한 진지가 없었고, 방어하던 진지를 적에게 뺏긴적이 없는 그야말로‘상승불패 무적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였습니다.

서울수복을 가능케 한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날은 그해 9월 15일. 국군과 유엔군으로 구성된 7만5천명의 병력과 2백61척의 함정이 맥아더 원수의 지휘하에 인천에 들어와 인천, 수원 등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서울로 진격, 13일만에 수도 서울을 완전 탈환하는 쾌거를 올린 것입니다.

이 기념행사는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시 주관으로 개최하다가 1973.10.10 해병대사령부가 해군에 통폐합된 이후 행사를 일시 중단하였으며,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이후 1990년부터 매년 해병대사령부 주관 서울시 후원으로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울수복기념행사




서울 수복 및 중앙청 태극기 게양 행사는 6.25당시 90여일간의 공산치하의 압제로부터 수도서울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서울 수복중 희생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개최하고 있습니다.

서울 수복은 남침한 북괴군에게 빼앗겼던 중앙청을 90일만에 되찾는 순간이었으니 그때의 감동이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때는 1950년 9월 27일 먼동이 틀 무렵. 서울이 완전 수복된 날이 9월 28일이니 수복일 하루 전에 이미 중앙청 상공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던 것입니다.

서울시청 옥상에 태극기가 게양된 날은 중앙청보다 하루 전인 26일 오후 3시. 이날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이미 유엔군 사령부 명령 제9호로 “한국의 서울은 탈환되었다. 한국군 제17연대와 미 제7보병사단 및 제1해병사단을 포함한 유엔군 부대가 서울을 완전 포위함으로써 서울은 다시금 주인의 손에 돌아왔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시청 옥상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지만 26일 저녁까지도 아군이 완전 점령한 서울시는 서울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으며, 연합군은 27, 28일 이틀간 나머지 절반을 완전 탈환해 28일부터는 서울시가 시정을 재개하고 경찰도 그 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수복을 가능케 한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날은 그해 9월 15일. 국군과 유엔군으로 구성된 7만5천명의 병력과 2백61척의 함정이 맥아더 원수의 지휘하에 인천에 들어와 인천, 수원 등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서울로 진격, 13일만에 수도 서울을 완전 탈환하는 쾌거를 올린 것입니다.

이 기념행사는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시 주관으로 개최하다가 1973.10.10 해병대사령부가 해군에 통폐합된 이후 행사를 일시 중단하였으며,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이후 1990년부터 매년 해병대사령부 주관 서울시 후원으로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통영상륙작전문화제



⊙개요
북한군의 공격을 8월에 접어 들면서 약간 저하되고 대략 낙동강을 중심으로 적군과 아군이 대치하는 상태에서 동부전선은 포항을 중심으로 하여 중부에서는 왜관 등지에 혈전이 여전히 반복되었고 서부전선에서는 마산과 진해, 부산을 위협하게 되었다.

⊙전투상황
진동리 지구의 적은 매일 증강되는 유엔군의 철통같은 방어작전으로인해 그들의 의도대로, 마산, 진해, 부산등을 손아귀에 넣을수 없음을 알고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는 통영으로 돌려 견내량 해협을 건너 거제도를 점령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마산과 진해는 해상으로부터 봉쇄되며 양지역은 적의 사정거리에있게 되는 것이었다.
8월 15일미명을 기하여 북한군 7사단 소속의 증강된 1개대대 약 650명이 고성으로부터 통영으로 향하였고 이날 17:00시 경에는 그 선두가 통영읍 북방 3킬로미터 지점인 통영반도로 통하는 가장 좁은 지대인 원문고개에 침투하였다.
이때 경찰관 약 100명이 원문고개를 방어하고 있었으나 적의 공격을 감당치 못하고 야음을 이용 통영을 포기하고 한산도로 철수하여 버렸다.
이러한 형세하에서 1950년 8월 16일 해군참모총장은 김성은 부대로 하여금 즉시 거제도 서해안에 상륙하여 통영으로부터 거제도에 참투하려는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에 따라 2척의 LST에 병력을 분승시켜 밤 10시경 군항을 출항했던 김부대장은 이튿날 새벽 통영반도 동북방에 있는 동쪽 기슭에 이르러 자신이 세워놓은 북안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즉 먼저 2개조의 정찰대를 운용하여 통영시가지 쪽과 거제도 서해안 쪽의 적정을 살펴본 그는 해군본부에 타전하여 작전명령의 변경을 요청했던 까닭은 불과 기백명의 적은 병력으로 거제도의 긴 서해안을 수비하는 소극적이고 불안한 대책보단 차라리 당시 통영 해상을 초계중에 있던 PC-703호를 비롯한 수척의 우리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통영읍 동북단의 장평리(長坪里)에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그 이튿날 새벽 통영시가지를 감제(瞰制)하는 시가지 동쪽의 망일봉을 선제점령하고, 일부 병력을 통영읍의 진입 길목인 원문고개로 진출시켜 적의 퇴로와 적 후속부대의 진입을 차단하는 가운데 총공격을 감행한다면 통영의 적을 독안에 든 쥐를 때려잡듯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끈질기게 요청을 거듭한 끝내 마침내 작전명령의 변경을 승인 받게된 김성은 부대장은 703호 함장과의 협의를 거쳐 PC-703호와 소해정 504, 901, 302, 307호 등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적으로 하여금 시가지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가장하기위해 그 일대에 포화를 집중시키고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감행, 계획대로 그 이튿날 새벽 1개 중대를 원문고개로 진출시키는 한편 망일봉을 점령하여 한발 뒤늦게 그 봉우리로 올라오는 100여 명의 적을 요격하여 승기를 잡게되었다.
그날 오후 해군통제부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의 응원병력을 지원받은 다음 그 다음날(8.19) 미명을 기해 총공격을 감행한 끝에 그날 오전 10시경 드디어 적 수중에 들어가 있던 통영 시가지를 완전 탈환하게 되었다.
▶군악연주회




해병대 군악대는 1951. 5. 10 군악대 창설 지시에 의거 해병대에 입대한 국민 방위군 출신 군악대원 이관승 외 15명이 해병대 군악대 창설요원으로 창설 준비를 하였으며, 1951. 6. 18 부터 해병학교에 설치된 제1기 특과 하후생 교육대에 군악요원 52명을 입교시켜 약 3개월간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1951. 9. 30 진해에서 해병대 군악대(초대 군악 대장 이관승 병조장)를 창설하였다.
해병대 군악대는 1951. 5. 10 군악대 창설 지시에 의거 해병대에 입대한 국민 방위군 출신 군악대원 이관승 외 15명이 해병대 군악대 창설요원으로 창설 준비를 하였으며, 1951. 6. 18 부터 해병학교에 설치된 제1기 특과 하후생 교육대에 군악요원 52명을 입교시켜 약 3개월간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1951. 9. 30 진해에서 해병대 군악대(초대 군악 대장 이관승 병조장)를 창설하였다.
1952. 4. 10 진해 해양극장에서 해병대 창설 제3주년 시민위안 연주회를 가졌으며, 1952년 9월에는 서해도서부대 백령도 및 석도를 방문하여 도서부대 장병을 위문하였다.
1952. 4. 15 해병대 창설 제4주년 기념 제2회 정기연주회를 실시한 후, 1954. 9. 28 수도탈환 제4주년 기념 제3회 정기 연주회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진해에서 순회 개최하여 해병대 군악대의 존재를 대외로 과시 하였다.
그 뒤 1956. 6 해병대사령부가 서울용산 으로 이동함으로써 해병대 군악대는 서울 한남동 막사로 이동하여 1960. 4. 15 제4회 정기연주회를 서울 원각사에서 실시하였고, 1961. 7. 4 해병대 고적대 창설, 1970. 6. 25 각군 대항 군악연주회 우승 등 1973년 10월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될 때까지 18년간 군악교육대를 창설하여 1995. 4. 20 해병대 창설 제46주년 기념 제8회 정기연주회를 경기 도립 수원 문화예술회관에서 실시한 후 매년 군악대 정기연주회를 실시하고 있다.
해병대는 해병대사령부 군악대, 제1사단 군악대, 제2사단 군악대를 보유하고 있다.
▶의장대행사


1953. 12. 10 해병대 의장대를 창설하여 해병대 각종 의식행사, 각군 의장행사, 9.15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 및 9.28 서울수복 중앙청 국기게양 기념행사와 정부기관이나 기타 사회 단체에 해병대 의장대가 초청되어 시범을 보여 해병대 군기의 표상으로 알려져 왔다.


1955. 1. 15 제1상륙사단 창설 이후 해병대 의장대는 한국군 최초의 의장대 쇼를 개발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대형을 만들어가며 총대를 빙빙 돌리기도 하고, 공중으로 총을 집어 던지는 의장대 시범 특별 쇼프로그램으로 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는데 그 의장대 쇼를 위하여 군악대는 시작부터 끝까지 의장대의 변화무쌍한 동작에 맞추어 연주를 하였다.그 이후 의장대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해군사관학교 원양실습훈련단에 동승하여 동남아 순회공연 등을 실시하며 해병대의 명예와 국위를 선양하였다.


1973. 10. 10 해병대 통.폐합 이후 해병대 의장대는 해체되고 제1사단 의장대를 존속 유지시켰으며, 1987. 11. 1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이후 1994. 4. 4 해병대 의장대를 재창설하여 해병대 의장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